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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품보다 조립의 시간이 남는다
교육2024년 3월 15일글쓴이 오세기 · PE Studio 대표

완성품보다 조립의 시간이 남는다

다 만든 종이 인형은 결국 책상 한구석에 남는다. 정작 오래 기억되는 건 그것을 만들던 한 시간쯤의 어떤 표정이다.

완성된 종이 인형은 대개 일주일을 못 넘긴다. 책상 위에 며칠 서 있다가, 어느 순간 책 사이에 눌리고, 결국 어딘가로 사라진다. 처음엔 그게 좀 허무했다. 며칠을 설계한 구조물이 그렇게 쉽게 잊히는구나 싶어서.

그런데 부모들에게 가끔 연락이 온다. 아이가 그걸 만들던 저녁을 이야기한다. 종이가 자꾸 안 서서 끙끙대다가, 무게중심을 살짝 옮기니 거짓말처럼 일어서던 순간. 남는 건 인형이 아니라 그 한 시간이었다.

AI 자동 생성 출력만 받는다 VS 직접 손으로 만든다
▲ AI가 결과물을 만들수록, 인간의 인지·운동 발달은 직접 손을 쓸 때 일어납니다.

손이 멈춰 있던 시간

조립에는 묘한 정적이 있다. 풀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접은 자리가 자리를 잡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의 손은 잠깐 멈춘다. 나는 이 멈춤이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의 화면은 멈추는 법이 없다. 다음 영상이 곧장 시작되고, 손가락은 쉴 새 없이 위로 쓸어 올린다. 종이는 그렇지 않다. 기다려야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 기다림 속에서 아이는 자기가 무얼 하고 있는지 잠깐 들여다본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몸에 남는다

우리가 설계하는 구조는 한 번에 완성되도록 만들지 않는다. 일부러 그렇게 둔다. 한 번 접어 세워보고, 쓰러지면 어디가 문제인지 보고, 다시 접는다. 이 관찰과 수정의 반복이 손에 배는 것이 핵심이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백 년 전에 이미 '행하면서 배운다'고 했다. 아이는 설명을 들어서가 아니라, 직접 해 보고 그 결과를 겪으면서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종이를 세우다 쓰러뜨리고 다시 세우는 동안 벌어지는 일이 정확히 그것이다. 손이 먼저 겪고, 머리가 나중에 정리한다.

완성품은 사진 한 장으로 남지만, 그 과정은 몸으로 남는다. 십 년 넘게 이 일을 하며 확신하게 된 한 가지다. 종이는 결국 버려지더라도, 그것을 세우느라 애쓰던 시간은 아이 안에 오래 머문다.

오세기 · PE Studio 대표

2013년 Paper Engineering Studio(구 액션크래프트)를 설립해 지기구조 설계 특허 11종을 보유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2회 수상했습니다. 페이퍼토이·팝업북·오토마타 등 움직이는 종이 구조를 직접 설계합니다.

회사·설계자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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