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11종이 실제로 뜻하는 것
특허는 자랑하려고 받은 게 아니다. 같은 실패를 두 번 하지 않으려고 적어둔 기록에 가깝다.
특허 11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적어두면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그 숫자를 만든 건 대단한 순간이 아니라, 수없이 쓰러지고 찢어지고 뻑뻑하던 종이들이었다.
2013년에 스튜디오를 열고 '움직이는 종이'를 설계하기 시작한 뒤로, 특허는 자랑하려고 받은 게 아니다. 같은 실패를 두 번 하지 않으려고 적어둔 기록에 가깝다.
특허란 본디 발명을 세상에 공개하는 대신, 일정 기간 그 방식을 남이 함부로 베끼지 못하게 막아 주는 제도다. 말은 거창하지만 작은 스튜디오에는 다른 쓸모가 더 크다. 어렵게 찾아낸 구조를 잊지 않도록 글과 도면으로 묶어 두는 일. 자랑보다 보관에 가깝다.
한 번 푼 문제는 다시 풀지 않는다
종이를 어떤 각도로 접어야 평면이 스스로 일어서는지, 어디에 칼집을 내야 풀 없이도 팔이 움직이는지 — 이런 건 한 번 알아내기까지가 오래 걸린다. 며칠을 시험 모형으로 보내고서야 겨우 길을 찾는다.
그렇게 찾은 해법을 특허로 정리해 두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같은 자리를 헤매지 않는다. 11종이라는 숫자는 곧 열한 번, 처음부터 다시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지기구조의 사전이다. 새 캐릭터를 의뢰받으면 그 사전을 펼쳐 가장 알맞은 메커니즘을 골라 쓴다. 그래서 평균 3~4주 안에 설계가 끝난다.
빠름이 아니라 단단함
특허가 보장하는 건 속도라기보다 바닥이다. 현대백화점, KAIST, 경주박물관, 수원시, 국립기관까지 650건 넘게 납품해 오는 동안, 매번 새로 발명했다면 그 일정도 그 품질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검증된 구조 위에서 시작하니 무너질 자리가 줄어든다.
이 축적이 밖에서 어떻게 보였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2017년 전자신문은 우리를 '움직이는 페이퍼 토이'를 교육과 비즈니스로 끌어온 곳이라 소개했다(전자신문, 2017). 바깥의 평가야 어떻든, 내게 먼저인 건 열한 번 막다른 길을 지나며 한 줄씩 적어 둔 그 구조의 목록이다.
물론 사전에 없는 문제는 늘 새로 나온다. 그럴 때는 또 며칠을 종이와 씨름하고, 운이 좋으면 사전에 한 줄이 더해진다. 결국 특허 11종이 뜻하는 건, 11번의 막다른 길을 지나왔다는 것이다. 그 길들이 다음 사람의 종이를 조금 더 잘 서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세기 · PE Studio 대표
2013년 Paper Engineering Studio(구 액션크래프트)를 설립해 지기구조 설계 특허 11종을 보유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2회 수상했습니다. 페이퍼토이·팝업북·오토마타 등 움직이는 종이 구조를 직접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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