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13, 종이로 먹고산다는 것
움직이는 종이를 설계하며 13년을 보냈다. 종이로 먹고산다는 게 어떤 일인지, 담담히 돌아보며 적었다.
종이로 먹고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한 번 더 묻는다.
2013년에 이 스튜디오를 열 때 나도 확신은 없었다. 종이를 접어 무언가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지, 그걸로 십 년을 넘게 버틸 수 있을지. 다만 평면이 입체가 되는 그 순간이 좋았고, 그 좋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 우리에겐 지기구조를 스스로 지탱하는 설계 특허가 열한 가지 있지만, 그 숫자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밤새 접었다 편 수많은 시제품들이다.
매번 처음부터
이 일에는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처음이 되는 구석이 있다.
제품이 바뀌면 움직임이 바뀌고, 움직임이 바뀌면 구조를 새로 짜야 한다. 그래서 13년을 했어도 어제 풀던 문제와 오늘 풀 문제가 다르다. 누군가는 이걸 비효율이라 부를 것이다. 같은 걸 찍어내면 편할 텐데, 우리는 매번 새 도면 앞에 앉는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아직 이 일이 지겹지 않다. 반복되지 않는 일에는 늙지 않는 데가 있다.
현대백화점의 행사장에서, KAIST의 강의실에서, 수원시의 축제 부스에서 우리 종이가 누군가의 손에 들리는 걸 본다. 그때마다 도면 위의 선이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걸 느낀다.
종이접기에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페이퍼 엔지니어링'이라는 이름을 단 건 아니었다. 시작은 종이접기였다. 접어서 움직이는 도안을 그리고,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 접을 수 있게 책으로 묶었다. 『합체! 전투기 종이접기』 같은 놀이책이 그 시절의 흔적이다(길벗스쿨, 2020). 종이 한 장이 어떻게 하면 더 잘 접히고 더 잘 움직일지를 도안 위에서 수없이 시험하던 시간이, 나중에 구조 설계의 바탕이 됐다.
도안을 그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늘 구조와 힘의 방향을 따졌다. 종이접기를 어느새 '엔지니어링'이라 부르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회사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움직임을 뜻하는 '액션(action)'과 만들기를 뜻하는 '크래프트(craft)'를 붙여 액션크래프트라 지었다. 초기에는 울산에서 작은 팀으로 버텼다.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지원을 받았고, 센터가 소개한 〈꿈을 쫓는 사람들〉에 '세상을 즐겁게 만드는 액션크래프트'로 실리기도 했다(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 2016). 그 무렵 장생포 고래박물관의 생태체험교실을 맡아 운영하며, 종이가 전시장과 교실에서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를 손으로 익혔다.
이듬해 전자신문은 우리를 '움직이는 페이퍼 토이'를 교육과 비즈니스로 끌고 온 곳이라 소개했다(전자신문, 2017). 그 뒤로 일은 방과후 수업과 자유학기제 교실로, 서울역사박물관 같은 박물관 체험과 DDP 디자인놀이터로 넓어졌다. 자체 제품은 교보문고와 핫트랙스, 홈플러스·이마트·롯데마트·다이소 매대에도 놓였다.
돌아보면 전문성이라는 건 한 번에 생기지 않았다. 종이접기 도안 한 장, 쓰러진 시제품 하나, 납품한 교구 한 세트가 쌓여 만들어졌다. 특허 열한 가지도, 그사이 두 번 받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도 그 축적의 결과지 출발점이 아니었다. 상은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 종이로 여기까지 왔다는 작은 표지로 여기고 있다.
남는 것은 결국 태도
오래 한 일에 대해 자랑할 말은 별로 없다. 다만 지키려 한 것이 있다면, 매번 정직하게 견적을 내고, 먼저 샘플을 만들어 보내고, 납품한 물건이 손님의 손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 정도였다.
종이는 약한 재료다. 젖으면 무르고, 접으면 자국이 남는다. 그런데 그 약한 것으로 움직이는 구조를 세우는 일을 13년 하다 보니, 약함을 다루는 일에도 나름의 단단함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종이로 먹고산다는 건 그런 단단함을 매일 조금씩 쌓아가는 일이었다.
처음엔 종이가 약해서 불안했다. 지금은 그 약함이 오히려 마음에 든다. 약한 재료는 함부로 다루면 곧장 티가 난다. 그래서 정직해질 수밖에 없다. 튼튼한 재료 뒤에 숨을 수 없는 일을, 나는 13년째 하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우리는 작은 스튜디오다.
오세기 · PE Studio 대표
2013년 Paper Engineering Studio(구 액션크래프트)를 설립해 지기구조 설계 특허 11종을 보유하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2회 수상했습니다. 페이퍼토이·팝업북·오토마타 등 움직이는 종이 구조를 직접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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