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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2026년 6월 5일

견적서 한 장을 쓰기까지

단가표가 없는 시장에서 견적서 한 장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그 사흘 동안 내가 책상 앞에서 하는 일에 대해 적었다.

견적서 한 장을 쓰는 데 사흘이 걸릴 때가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그게 부끄러웠다. 다른 업종은 단가표를 펼쳐 칸을 채우면 끝나는데, 나는 왜 종이 한 장을 두고 사흘을 앉아 있나 싶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종이에는 정가가 없다. 같은 캐릭터라도 팔을 들게 할지 고개를 끄덕이게 할지에 따라 접는 횟수가 달라지고, 그 한 번의 접힘이 단가를 바꾼다.

보이지 않는 것을 세는 일

견적을 낸다는 건 숫자를 부르는 일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없는 물건을 머릿속에서 한 번 만들어보는 일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나는 먼저 그 종이가 누구의 손에 들어갈지를 떠올린다. 축제 부스에서 아이가 받을 것인지, 박물관 기념품 매대에 놓일 것인지. 받는 사람이 다르면 종이의 두께가 달라지고, 두께가 달라지면 칼선이 달라진다. 수량이 천 부인지 만 부인지에 따라 인쇄 방식이 바뀌고, 포장을 낱개로 할지 묶음으로 할지에 따라 또 견적이 출렁인다. 그 모든 변수를 한 번씩 손으로 짚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숫자를 적을 수 있다.

평면 전개도 접기 기하학 사고 입체 구조
▲ 평면이 입체가 되는 과정 자체가 강력한 기하학·공간 인지 학습입니다.

그래서 나는 견적서를 쓰기 전에 늘 빈 종이를 한 장 접어본다. 팔리는 물건이 아니라, 그저 손이 기억하는 무게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직한 숫자의 무게

단가표가 없다는 건 매번 처음부터 계산한다는 뜻이고, 그건 곧 거짓말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칸을 채워 보내는 견적에는 마음이 담기지 않는다. 하지만 사흘을 들여 매겨낸 숫자에는, 그 물건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질지에 대한 내 책임이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견적서의 맨 아랫줄을 적을 때마다 조금 긴장한다. 그 숫자가 곧 약속이기 때문이다.

손님은 그 사흘을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다만 받아 든 견적서가 어쩐지 미덥다고 느낀다면, 그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종이를 한 번 접어봤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견적이 필요하시면 무료 견적으로 의뢰를 남겨주시면 된다. 답은 늦더라도, 정직하게 보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