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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2026년 6월 9일

왜 하필 종이였을까 — 13년째 종이를 고집하는 이유

종이를 한 번 접으면 그 자리에 선이 남는다. 그 선을 13년 동안 들여다보며 일했다. 왜 다른 재료가 아니라 종이였는지에 대한 이야기.

종이를 한 번 접으면 그 자리에 선이 남는다. 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선을 13년 동안 들여다보며 일해 왔다.

2013년에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왜 하필 종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더 튼튼한 플라스틱도 있고, 더 고급스러운 금속도 있는데 말이다. 그때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안다.

만만해서, 그래서 어렵다

종이는 누구나 만질 수 있는 재료다. 아이도 접고, 노인도 접는다. 진입 장벽이 없다. 그런데 그 만만함이 설계자에게는 가장 어려운 조건이 된다.

평면 한 장이 스스로 일어서서 입체가 되고, 손잡이를 당기면 팔이 움직이게 만들려면 종이의 결과 두께, 접히는 각도를 전부 계산해야 한다. 우리가 자기 구조 설계로 특허 11종을 받은 것도 결국 이 단순한 재료를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였다. 쉬운 재료일수록 설계는 정직해야 한다.

AI 자동 생성 출력만 받는다 VS 직접 손으로 만든다
▲ AI가 결과물을 만들수록, 인간의 인지·운동 발달은 직접 손을 쓸 때 일어납니다.

손에 남는 감각

종이에는 기억이 있다. 한 번 접힌 자리는 다음에 더 쉽게 접힌다. 종이를 다루다 보면 재료가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한 번 지나간 자리는 흔적으로 남고, 그 흔적을 따라 다음 움직임이 결정된다.

현대백화점, 경주박물관, 수원시 일을 하면서 650건이 넘는 작업을 거쳤지만, 매번 처음 종이를 접을 때의 감각은 비슷하다. 손끝에 닿는 저항, 접히는 소리. 화면 속에서는 끝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13년이 지나도 답은 거창하지 않다. 종이는 다루기 쉽고, 그래서 끝이 없다. 나는 아직 이 재료를 다 모른다. 그게 계속 종이 앞에 앉는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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